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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음악 속 사건사고) 콜럼바인 총기 사고와 마릴린 맨슨

eliss_paynes 2020. 4. 30. 11:20

1999년 오늘은 사건이 발생한 미국은 물론 전세계를 충격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던 미국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기 사고가 발생했던 날입니다.

해당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학생 2명이 각종 총기류를 무장하고 학생들을 향해 무차별 사격을 가하면서 총 13명(학생 12명, 교사 1명)이 사망하고 21명의 사람들이 부상을 당했던 초유의 사건입니다. 2018년에 플로리다에서 또 다른 사고가 발생하기 전까지 고등학교 학생이 일으킨 묻지마 사건 중 최대 참사이기도 했습니다.

사건은 가해자 2명이 모두 현장에서 자살하면서 종결되었지만 이후에 각종 미디어들은 사고가 일어난 원인과 배경에 대해 집중적으로 분석하기 시작했습니다. 보통 이런 이해할 수 없는 충격적인 사건을 일으킨 가해자들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부모로부터의 학대, 학교에서의 따돌림,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 등 어릴 적 트라우마가 성장 단계에서 가해자들의 정신 상태에 영향을 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 사건도 미디어의 초기 관심은 이런 곳에서 출발했지만 딱히 이들에게서 정신적 이상이나 트라우마의 흔적을 명확히 찾아보긴 힘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가해자들의 집에서 마릴린 맨슨의 음반이 발견 됩니다. 무언가 대중의 관심을 끌만한 연결고리를 찾고 싶어했던 미디어에게는 너무나 좋은 먹잇감이었죠. 각종 매체들은 너도나도 가해자들이 마릴린 맨슨의 음악으로부터 살인에 대한 영감을 얻은 것이라며 기사들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마릴린 맨슨의 앨범 "Antichrist Superstar" 앞면 표지

"살인자들이 록의 괴물 마릴린 맨슨을 숭배했다"

"악마를 숭배하는 미치광이가 아이들에게 살인을 지시했다"

와 같은 자극적인 문구가 이어졌습니다. 심지어 가해자들이 학살을 하던 당일날, 마릴린 맨슨의 티셔츠를 입고있었다는 가짜뉴스가 나오기까지 했죠. 많은 종교단체, 정치집단 그리고 같은 음악산업 내의 동료 뮤지션들조차 미디어의 비판 공세에 합세하기도 했습니다.

마릴린 맨슨은 사건 초기 행사도 취소하고 미디어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곧 자신의 입장을 밝힙니다. "자신의 밴드는 절대 살인을 부추기거나 악마를 숭배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며, 오히려 증오, 폭력, 살인, 자살, 약물중독과 같은 행위를 비판하는 음악을 한다"라고 말이죠.

GTA와 같은 게임이나 헤비 메탈 음악은 폭력, 살인사건 때마다 미디어의 마녀 사냥에 등장하는 단골 손님들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단지 가해자가 폭력적인 게임을 했다고 해서 혹은 사악한 음악을 들었다고 해서, 그것이 살인이나 폭력의 직접적인 원인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건 마치 "살인자의 집에서 성경이 발견되었으니 기독교와 예수가 살인의 영감이 되었다"라고 얘기하는 것 만큼이나 황당한 비약이자 억지 논리일 뿐 입니다. 미국의 영화감독인 마이클 무어가 가해자들이 볼링을 즐겼으니 볼링이 원인이다라고 비판한 영화 "볼링 포 콜럼바인"을 만든 원인이기도 하죠.

마이클 무어 감독의 영화 "볼링 포 콜럼바인"

이제 사건이 발생한 지도 어느덧 21년이 되었습니다. 미국은 트럼프의 집권으로 총기 규제에 대한 법안이 통과되기는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사고가 발생한 콜럼바인 고등학교에 찾아가 "교사들의 총기 소지를 허가해 주겠다"는 막장 대안을 제시해 실소와 함께 미국의 안전에 대한 우려를 더욱 증폭시켰던 트럼프. 미국이 가진 이러한 위선과 부조리에 대한 날선 비판을 위해 자신들의 이미지와 음악을 사용하고 있는 마릴린 맨슨. 앞으로도 유사한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음악이나 게임에 대한 미디어의 공격은 계속될 것 입니다. 어차피 미디어의 관심은 이 기사가 얼마나 많은 조회수를 올릴 수 있느냐이지, 진실이냐 아니냐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이죠. 그런 의미에서 마릴린 맨슨의 음악을 한번 더 감상해 주면서 오늘의 포스팅을 마치겠습니다. 21년전 오늘 끔찍한 사고의 희생자가 된 13명 고인들의 명복을 함께 빌면서 말이죠.

* 마릴린 맨슨 정규 4집 앨범 "Holy Wood (In the Shadow of the Valley of Death)"에 수록된 곡 "The Nobodies"의 뮤비. (노래 제목은 콜럼바인 사고의 가해자인 에릭 해리스, 딜런 클리볼드를 가르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