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티켓마스터가 티켓 환불 정책을 변경하여 코로나 사태로 인해 취소된 공연만 환불해 주기로 했다는 해외 웹진의 트윗을 리트윗 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좋아요와 리트윗이 연달아 십여 개가 달리더군요. 팔로워가 없던 저로서는 신기한 기분에 잽싸게 확인을 해 보니 BTS 팬클럽인 Army 분들이셨습니다. 뭐 속으로는 몇 일 동안 꾸준히 록음악 쪽 트윗을 계속 날리고 있던 상황이라 저와 취향이 맞는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드디어 생기는구나 하는 기대감을 가졌던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똑 같이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생각지 않게 하트를 연속으로 받으니 기분은 좋더군요. 그리고 티켓마스터의 횡포에 대한 불만은 역시나 음악 장르와 상관 없이 모든 음악 팬들의 공통된 부분이라는 것도 새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티켓마스터의 생각은 간단합니다. 티켓 가격을 환불해 주고 말고는 전적으로 공연을 기획한 기획사와 뮤지션에게 달려 있다는 것. 기획사 측에서 공연 취소를 결정할 경우 계약 규정에 따라 티켓마스터는 기획사로부터 수수료를 돌려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정 연기나 미정일 경우에는 티켓마스터와 기획사 간에 수수료 부담에 관해 협의를 해야 하는데, 누구도 이 비용을 부담하고 싶어하지 않죠. 특히 기획사 측에서는 공연을 준비하기 위해 고용한 수 많은 사람들과 이미 지출한 비용이 있는데, 거기에 추가로 수수료까지 부담할 경우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피해를 감수해야 합니다. 협의를 통해 공동 분담이나 다른 지원 방법 등을 충분히 검토해 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티켓마스터에서 일방적으로 공지를 해 버린 것 입니다.
현재 티켓마스터의 환불 정책 변경 소식은 SNS를 통해 빠르게 퍼져 나가고 있고 대부분이 티켓마스터의 독단적 결정에 대해 불만을 성토하는 분위기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코로나라고 하는 초유의 사태 속에서 티켓마스터와 같은 대형기업이 자기들의 이익만 챙기겠다는 심보를 너무나 노골적으로 드러냈다는 점에 있습니다. 이런 게 바로 미국 내 티켓 판매량의 8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독점 기업의 횡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얼마 전 배민의 수수료 정책 변경 건이 떠오르는 순간입니다)
전세계 수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 피해를 호소하고 있는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는 기업이나 사람들이 저마다 기부를 하거나, 스스로 희생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반면, 그와 정반대의 길을 걸어가려고 하는 티켓마스터의 행보는 비판의 화살을 피하긴 어려워 보입니다. 이미 많은 단체들에서 소송을 준비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죠.
이 상황에서 문득 26년 전인 1994년, 펄잼이 티켓마스터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 사건이 생각납니다. 당시 펄잼은 티켓 판매가 티켓마스터에 의해 독점되고, 지나치게 높은 수수료로 인해 티켓 가격이 올라가면서 음악 팬들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것에 불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해 여름에 계획되어 있던 자신들의 콘서트 티켓을 매우 낮은 가격으로 책정하려고 했지만, 티켓마스터에서는 이를 허용하지 않았죠. 게다가 티켓마스터는 공연업계에 압력을 가해 94년의 가장 큰 뮤직 페스티벌이었던 '우드스톡 94'와 '롤라팔루자' 공연 라인업에서 펄잼을 빼버리는 만행까지 저지릅니다.
당시는 펄잼이 앨범 "Ten"과 "Vs"의 연이은 대박으로 이미 미국 내에서의 인기가 너바나를 능가한 상태였고, 공연 티켓이 순식간에 매진돼 티켓 구하기가 하늘에 별따기 만큼 어려웠던 시절이었습니다. 페스티벌의 흥행과 직결되는 이런 밴드를 라인업에서 제외했다는 건 그만큼 펄잼이 티켓마스터에게 엄청난 눈엣가시였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펄잼은 결국 변호사를 통해 법무부에 공식적으로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티켓마스터의 CEO였던 프레드 로젠(Fred Rosen)은 "만약 펄잼이 공짜로 공연하고 싶다면, 우리도 기꺼이 티켓을 공짜로 판매할 용의가 있습니다"라며 조롱하기까지 했습니다. 펄잼은 그 해 여름 공연을 결국 취소할 수 밖에 없었고 이후 티켓마스터와 기나긴 소송전에 들어갑니다. 당시 타임지는 이들의 싸움을 "록큰롤의 성전(Holy Wars)"이라 부르기까지 했죠. 펄잼은 이때부터 티켓마스터와 계약 관계에 있지 않은 티켓 대행사들을 통해 낮은 가격으로 공연 티켓을 판매하며 거대 공룡과의 싸움을 계속해 나갑니다. 그들의 2집 앨범 제목이 될 뻔했던 "Five against One(하나에 대항하는 다섯)"이 결국 현실이 되어 버린 것이죠.(펄잼의 멤버는 5명입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법원이 최종적으로 티켓마스터의 손을 들어 주면서 펄잼은 이 소송에서 패하고 맙니다. 어쩌면 애초부터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펄잼은 이 소송 건으로 인해 금전적 손실은 물론 대중적 인기에도 큰 타격을 받게 됩니다. 티켓마스터와 계약된 대형 공연장을 피해 소규모 공연장을 이용할 수 밖에 없었고 그마저도 티켓마스터의 크고 작은 압력 행사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펄잼은 초창기부터 뮤직 비디오 제작을 거부하고, 언론 노출을 극도로 꺼렸다는 점에서 인기 하락은 예견된 것이었지만, 이 소송 패소가 하나의 분기점이 된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슈퍼 밴드로서 입게 될 타격을 감수하면서까지 음악산업의 부조리함에 대항해 싸웠던 펄잼의 투쟁에도 불구하고, 이 소송 이후 티켓 판매 산업에서 바뀐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이번 티켓마스터의 공지를 통해 새삼 깨닫게 됩니다. 오히려 티켓마스터는 이후 대형 연예기획사(Front Line Management), 공연기획사(Live Nation), 티켓판매 대행사(Front Gate Tickets) 등을 흡수하며 몸집과 영향력은 더욱 커졌습니다. 이번 코로나 사태로 인해 거대 독점 기업의 민낯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지만, 과연 이것이 공연 산업의 긍정적 변화를 이끌어 내는 방향으로 진화해 나갈 수 있을지 추이를 지켜봐야 겠습니다.
(해외기사) 보스턴 하드코어 씬이 록음악계에 미친 영향 (0) | 2020.05.03 |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