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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적 변신은 무죄) 글램의 흑역사를 지워버린 "판테라"

잡다한 정보

by eliss_paynes 2020. 4. 30.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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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션들은 여러가지 원인에 의해 음악적 노선을 바꿀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기존 팬들이 배신감을 느끼고 밴드에 등을 돌리는 경우도 생기고, 때로는 이전보다 더 탄탄해진 음악성으로 밴드의 수명을 연장시키거나, 무명의 설움을 이겨내고 밴드를 스타덤에 올려 놓기도 합니다. 오늘 포스팅할 그룹 "판테라"는 아마도 후자의 경우에 가장 적합한 케이스아 아닐까 생각되는데요.

판테라는 리드기타를 맡고 있는 다임백 대럴(다이아몬드 대럴), 드럼의 비니 폴 등이 주축이 되어 1981년에 텍사스에서 결성된 그룹입니다. 여기서 잠깐, 1981년이면 메탈리카와 슬레이어가 정식으로 결성된 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흔히 판테라를 스래쉬 메탈의 후발 주자로 인식하고 있죠. 바로 이 점이 오늘 얘기할 주제와 연결되어 있는 부분입니다. 계속 얘기를 이어나가 볼까요?

결성 초기 판테라가 추구한 음악은 당시 머틀리 크루를 위시하여 메인스트림을 장악하고 있던, 흔히 'LA 메탈'이라 불리던 '글램 메탈' 장르였습니다. 하이톤의 고음 창법, 몸에 꽉 붙는 가죽 옷과 진한 메이크업, 무엇보다 팝 음악 못지 않은 귀에 쏙쏙 박히는 멜로디 라인과 비교적 단순한 악곡 구성 등이 특징이었죠. 초기에는 아마도 자신들의 실제 정체성과 무관하게 이런 주류 음악 장르의 흐름에 합류해서 판테라라는 이름을 일단 알리려고 한게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결성 초기의 모습. 글램의 영향이 강하게 느껴진다. (서..설마 기타를 들고 있는 저 분이 다임백?!) 당시 보컬은 필립 안젤모가 아닌 테리 글레이즈(맨 왼쪽)

판테라의 이런 전략은 어느 정도 성공한 것처럼 보입니다. 초기에 스트라이퍼, 도켄, 콰이어트 라이어트 같은 당시로서는 거물급 밴드들의 서포트를 서면서 이름을 알렸고, 비록 독립 레이블이지만 1983년부터 85년까지 매년 정규 앨범도 꾸준히 발매했었기 때문입니다. 그럼 여기서 일단 당시 판테라의 모습과 음악적 경향을 볼 수 있는 음악을 한 곡 듣고 가시죠. 2집인 "Projects in the Jungle"에 수록된 리드 싱글 "All Over Tonight" 입니다.

그리고 1986년. 록음악 역사상 가장 중요한 한 해중의 하나라고 생각이 되는데요. 바로 메탈리카의 "Master of Puppets", 메가데스의 "Peace Sells... but Who's Buying?", 슬레이어의 "Reign in Blood" 이 세 앨범이 모두 이 한 해에 순서대로 발매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세 앨범들은 이후 스래쉬 메탈로부터 파생된 거의 대부분의 서브 장르들의 분기점이 된 작품들입니다. 현존하는 헤비 메탈 밴드들 중에 이 세 앨범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그룹은 많지 않을 겁니다.

판테라도 그 중 하나였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가죽옷과 쫄쫄이 스판덱스를 입고 싶지 않았고 음악적으로는 보다 헤비하고 거친 스래쉬 사운드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운드에 기존 보컬은 어울리지 않았죠. 그래서 거의 1년 간의 오디션을 통해 당시 18세였던 필립 안젤모를 후속 보컬로 정식 영입하게 됩니다. 그리고 나온 앨범이 정규 4집인 "Power Metal"입니다. 이 앨범부터 본격적으로 다임백 특유의 그루브함이 조금씩 나타나고 전체적으로 기존 작품들에 비해 헤비해 졌습니다만, 아직까지 완전히 글램의 영향에서 벗어나지는 않은 모습을 보입니다. 안젤모의 보컬 스타일도 멜로디를 따라 노래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고, 가끔씩 보여지는 하이톤 창법은 롭 헬포드를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아래 곡은 안젤모가 처음 참여한 앨범 "Power Metal" 중 "Down Below"라는 곡입니다. 한번 들어보시죠.

이 앨범 이후, 판테라는 Atco 레코드의 사장, 데릭 슐먼의 눈에 들어 처음으로 메이저 레이블과 계약을 하는 행운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더욱 강력하고 그루브한 사운드를 만들어 내기로 결심하고 만들어 낸 앨범이 바로 "Cowboys from Hell"(1990년)이었습니다. 이 앨범부터 기존의 글램/팝 메탈적 요소와의 결별을 선언하고, 앨범 전체가 그루브함으로 가득 찬, 당시 표현을 빌리면 '파워 그루브' 밴드로 거듭나게 됩니다. 그리고 이때부터는 엑소더스, 세풀투라와 같은 스래쉬 메탈 밴드들의 오프닝을 서면서 밴드의 색깔을 재정립해 나가게 되죠. 그 후 메탈리카와 함께 역사적인 모스코바 공연에 함께 설 기회를 갖게 되는데, 무려 50만 관중 앞에서 그들 특유의 미칠 듯한 그루브감을 선사하며, 밴드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각인시킴으로써 인지도가 급상승하게 됩니다. 그리고 나서 발매한 앨범 "Vulgar Display of Power"는 그들 변화의 정점을 찍으며, 빅4 이후 최고의 스래쉬 메탈 밴드로써 그들을 정상에 우뚝 서게 만들었습니다. 아래는 판테라가 그루브의 제왕임을 선포하는 듯한 "Vulgar Display of Power"의 오프닝 곡 "Mouth for War".

판테라는 변신에 성공한 이후, 글램을 지향했던 1집~4집에 대해 장례를 치르고 밴드 역사에서 삭제합니다. 이 4장의 앨범은 판테라 공식 웹사이트의 앨범 리스트에도 올라와 있지 않고, 팬들도 "Cowboys from Hell"을 이들의 정식 데뷔 앨범으로 인정하는 추세입니다.

비록 다임백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밴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그들이 만들어 낸 그루브함은 '면도날'이라 불린 다임백의 기타와 안젤모의 포효와 어우러져 여전히 청취자들의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이런 음악적 변신은 언제든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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